[INTJ와 ESFJ의 신혼 라이프] 더 이상 혼자 하지 않을 것
원래도 나는 독립적인 성격이었다. 일을 할 때 누군가가 "도와줄게"라고 나서는 게 마냥 고맙지만은 않았다. 어차피 그건 내 일이니까. 누가 나를 도와준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내가 책임져야 할 일이었고, 도와준다고 해서 내가 손을 놓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만약 그 사람에게 일을 위임했다면, 그의 실수는 그의 책임이 된다. 하지만 '도와주는' 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사람의 실수는 결국 내 책임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나를 도와주더라도, 나는 그 사람이 한 부분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한다.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병원에 있을 때, 선배 간호사가 도와준답시고 여러 일을 맡아줬다가 작은 실수들이 생겼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되곤 했다. 그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나는 그냥 도움을 안 받고, 남의 일도 도와주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도와줘야 할 때는 정확히 내가 한 부분을 알려주고, 꼭 다시 확인하라고 말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런데 병원이란 곳은, 그래도 일이 생길 땐 생기더라.
결국 중요한 건 마음의 무게다. 내가 실수했을 땐 "어머, 내가 이랬네ㅎㅎ" 하고 넘기지만, 남이 나를 도와주다 생긴 실수에 대해서는 먼저 '하...' 하는 마음이 든다. 아량을 가져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아서 그냥 내가 다 하는 편이 더 마음 편할 때가 많다.
또 나는 머릿속에 우선순위를 정해두고, 순서대로 계획대로 일을 처리해나가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누군가 갑자기 와서 그 흐름을 헤집어 놓으면 순간적으로 멍해진다. 물론 손이 빠른 편이라 일이 지체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이건 내가 다 못하겠다 싶을 땐 깔끔하게 도움을 요청한다. 핵심은, 내가 도와달라고 했느냐, 혹은 내가 요청하지 않았는데 누가 도와주느냐다.
이게 내 기질인지, 학습된 태도인지는 모르겠다. 누군가는 "가정도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했는데, 아마 맞는 말일 것이다.
나는 요리를 제법 잘하는 편이고, 혼자 살 때부터 배달 음식보다는 직접 해먹는 걸 더 좋아했다. 그래서 지금도 집에서 요리하는 게 어렵지 않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집안 요리는 대부분 내가 맡고 있는데, 오빠는 그런 내가 궁금하고, 또 고생하는 것 같아서 뭔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처음엔 오빠도 옆에서 이것저것 도와주려고 했다.
“이거 내가 하면 돼?”
“칼은 어디 있어?”
“지금 이거 뿌릴까?”
“고추는 지금 넣는 거야?”
하나부터 열까지 나한테 물어보니까, 오히려 요리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냥 나 혼자 하면 뚝딱 끝날 일을, 오빠가 자꾸 물어보니 내 요리도 봐야 하고 오빠가 하는 것도 같이 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결국 나는,
“오빠, 그냥 쉬어. 제발. 쇼파에서 TV 보고 있어줘.”
라고 말해버렸다.
그랬더니 오빠가 말했다.
“괜히 내 마음대로 했다가 네 마음에 안 들까 봐…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이런 생각을 하지? 어디 있는 지는 먼저 찾아보고 안 보이면 나한테 물어보면 되고
고추 넣고 이런 건 알아서 좀 하면 안되나 ?
생각해보면, 나는 오빠에게 나의 일을 위임했다고 생각하고
오빠는 나의 일을 도와준다고 생각한 것 같다.
나의 일을 위임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일은 오빠의 몫, 오빠가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오빠는 한 번도 요리를 ‘배워본 적’이 없다는 것을.
누군가가 제대로 가르쳐준 적도 없고, 매일 요리를 해야 할 필요도 없었던 삶이었다는 것을.
결혼 전, 본가에서 살 때는 파스타 정도는 해먹었다고 했지만,
냉장고 속 식재료를 살펴보고 요리를 계획하거나,
식재료가 떨어졌을 때 장을 봐야겠다는 감각 자체가 몸에 밴 사람이 아니었다.
아,
그런 사람에게 내가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한 건, 너무 많은 걸 바란 걸지도 모르겠다.오빠는 뭐든 잘 배우는 사람이었다. 단지, 내가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을 뿐.
그런데도 난 이미 익숙한 기준으로 많은 걸 기대하고 있었던 거다.
그 사실을 깨달았다.
생각해보면, 매번 “오빠, TV 보면서 쉬어”라고 말해도 오빠는 늘 내 옆에서, 혹시 도와줄 게 있는지 두리번거리며 있었다.
그게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그 마음이 얼마나 곱고 따뜻한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그래서 그날은 처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오빠가 계란 좀 풀어줘. 네모난 후라이팬에 네모나게 부쳐주면 돼.”
사실 그날은 준비할 시간이 좀 촉박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계란이 바닥에 떨어졌다. 내가 떨어뜨린 건데, 오빠가 휴지를 들고 와서 바닥을 닦아주며 물었다.
“이거 냄새날 것 같은데, 어디에 버려야 돼?”
속으로는, ‘행주 쓰면 되지, 왜 굳이 화장지를...’ 하고 답답한 마음이 올라왔다.
나는 “에휴” 하며 행주로 다시 바닥을 닦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순간 내가 내뱉은 그 ‘에휴’ 같은 반응이 꼭 필요했을까 싶다.
오빠는 그저 도와주려고 했을 뿐인데. 그 마음을 받아주는 방식이 조금 더 따뜻했으면 어땠을까, 반성해본다.
시간이 촉박해서 주방을 잠깐 비우고, 거실에서 로션을 바르고 있는데
그 사이 오빠가 내 대신 샌드위치를 완성하고 있었다.
옆에서 요리하는 걸 유심히 봤는지,
마지막에 싸는 랩을 꺼내들고는 조심스럽게 묻는다.
“이거… 나는 잘 안 뜯어져. 이렇게 하는 거 맞아?”
...귀엽다.
“이거 이렇게 뜯으면 돼.”
하면서 직접 보여주었다.
윗면과 아랫면 중 어느 쪽이 위로 가야 하는지,
왜 한 번 더 뜯어서 싸야 하는지,
두 번째 랩은 어떻게 감아야 예쁘게 마무리되는지 하나하나 설명해줬다.
그랬더니 오빠가,
약간 억울한 표정으로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승미야, 나 그 정도의 센스는 있어.”
완성된, 우리의 합작.
언젠가 오빠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오빠, 나중에 아빠가 되어서 아이들한테 요리도 해주려면 지금부터 연습해야 돼.
내가 없을 때나 혼자 있을 땐, 적어도 주방에서 간단하게라도 뭔가를 해먹었으면 좋겠어.”
그랬더니 오빠는,
“핸드폰 보면서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해줬다.
“오빠, 그건 ‘할 수 있는지’의 문제가 아니야.
처음부터 간단한 것부터 해보는 거야. 내가 알려줄게.”
그리고 알게 됐다.
오빠는 생각보다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저 어떤 요리를 해야 할지,
'선택'을 못하는 것뿐이었다.
그날 나는 한 가지 중요한 걸 배웠다.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그리고 무언가를 함께 만든다는 게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한 일인지.
너무 행복했다.
함께 무언가를 만든다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인 줄 몰랐다,
그랬더니 오빠가 말했다.
“조금은 답답할지라도, 천천히 알려주면 나 잘해.”
그래,
이렇게 하나씩 서로를 알아가고,
하나씩 배우는 게
인생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