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색해서 만화 형태로 줄거리를 보여주고, 어떤 내용이 담겨 있다는 걸 알려주니까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뿜뿜 생겼다.
그러다 또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끈 영상, 고명환 작가의 '이것만 알면 다 읽은 겁니다. 데미안 100번 읽은 작가의 데미안 해석'
개그맨 명환님이 언제 이렇게 작가가 됐지? 하면서 보는데 말 진짜 잘한다와 함께
삶에 대한 통찰력을 주었다.
데미안에 이런 내용이 있다구 ? 하면서 바로 빌림.
2. 인상 깊었던 문장 또는 장면
"나방은 밤에 수컷들이 이 암컷을 향해 날아오지. 그것도 여러 시간이나 떨어진 곳에서! 수킬로미터 떨어진 데서도 수컷들은 모두 그 지역에 있는 이 한 마리 암컷을 감지하는 거야. 이 나방 암컷이 수컷만큼 많다면, 수컷들은 그만큼 후각을 갖지 못했을 거야. 동물이든 사람이든 모든 주의력과 모든 의지를 특정한 데 집중하면 거기 도달하는 거야. 어떤 사람을 충분히 면밀하게 바라보렴. 그러면 그에 대해 그 자신보다도 더 잘 알게 돼.' ... "그렇다면 의지란 또 어떻게 되는 거지? 네 말대로라면 인간은 자유의지가 없다면서. 그런데 우리가 어떤 것에 의지를 확고하게 집중하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도 했잖아. 그럼 말이 안 맞지! 내가 내 의지의 주인이 아니라면 나는 내 의지를 멋대로 이것 또는 저것에 집중하게 할 수가 없잖아" ... "예를 들어 저 나방이 어떤 별이나 다른 어떤 곳에 의지를 집중하려면 그건 안 되는 일이야. 나방은 절대로 그러지 않겠지만. 나방은 자기에게 의미 있고 가치가 있는 것. 자기에게 필요한 것. 무조건 가져야 하는 것만을 찾아. 그래서 믿을 수 없는 일을 해내지. 나방은 다른 동물에겐 없는 마법과도 같은 여섯번째 감각을 발전시킨 거야! ... 그 소원이 내 안에 온전히 들어 있어야만, 정말로 내 존재가 그 소원으로 가득 채워져 있어야만 그걸 강력히 원하고 또 실천할 수 있는거야. 정말 그런 경우라면, 그러니까 네 내면으로부터 막을 수 없이 솟구쳐올라오는 것을 시도하면, 그건 이루어진다."
무언가 간절히 원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 수컷 나방이 암컷 나방을 향해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있던 찾아 오는 것처럼 모든 주의력과 의식을 그 곳에 쏟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 1) 영어, 일본어 원어민처럼 구사하기. 내가 나중에 어딜 가서 살게 될지 모르고 내가 어떤 누구를 만나 사업 동업을 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2) 박학다식한 사람되기. 내 인생의 올바른 길을 찾아가려면 그만큼 많은 걸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 3) 남에게 선행을 베푸는 사람 되기. 내가 멋진 사람이 되어 남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도록 하는 게 내 삶의 목표.
정리해보니 내가 원하는 게 결국 남들에게 괜찮은 사람으로보이기 위해서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과연 이게 정말 내가 원해서 하는 걸까라는 고민이 들어 챗 쥐피티한테 물어보니 타인의 시선을 전혀 신경 안 쓰는 ‘완전한 순수성’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아요. 우리는 타인과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나의 정체성도 그런 관계 속에서 형성되니까요. 란다.
BGM) 바흐의 마태수난곡 Mattew Passion 구약이나 신약에서 나타나는 이 하나님은 특별한 현상이긴 하지만 원래 나타나야 할 모습 그대로가 아니란거지. 신은 선하고 고귀하고 아버지 같고 아름답고 높고도 다감한 어떤 존재다. 하지만 세상은 다른 것으로도 이루어져 있어. 그런데 그건 모조리 악마의 것으로 돌려버리지. 세계의 이부분, 절반이 그냥 꿀떡 삼켜진 채로 하나도 언급되지 않는 거야. ... 난 우리가 모든걸 존중하고 거룩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해. 인위적으로 반으로 나눈 다음 공식적으로 인정한 절반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말이야.
종교가 나라를 정치하던 서양 시대에 모든 도덕적인 관념의 기준은 종교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도덕은 유교적인 사상이 깃들어 있는데, 요새 들어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선과 악, 옳음과 잘못 등은 누가 판단하는 것일까? 신자유사상,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상이 들어오면서 기준들이 애매모호해지고, 그로 인해 많은 사건과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 이게 옳다, 이건 틀렸다 를 외치는 것보단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려는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데미안은 말한다.
꿈을 꾼 적이 있다. 하나님이 12제자를 데리고 오는 꿈. 뿌연 구름이 걷히고 저 멀리서 나에게 다가와 손을 건내는 순간 꿈에서 깼다.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친구는 나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생겼는데? 왜 다들 그런 모습이지 ㅋㅋ 그게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어? ㅋㅋ 말했다. 그 때는 그냥 웃어 넘겼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 하나님의 형상도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닌,사회와 문화 속에서 학습된 신의 모습이었다. 원래 나타나야 할 모습 그대로가 아니란 것, 사람들이 정해놓은 형상.신이라는 존재를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한을 두고 있진 않았나 생각해본다.
... 동료들이 여자들을 찾아갈 때면 한 번도 따라가지 않았다. 사랑에 대한 불타는 동경을 지닌 채, 희망 없는 동경을 품은 채 홀로 남았다. ... 나는 그녀에게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주었다. 단테는 읽지도 않았지만 어떤 영국 그림에서 그 이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 나는 나만의 제단을 세우고 거기에 베아트리체의 모습을 걸었다. 어두운 힘들에게서 빼낸 삶의 부분을 밝은 힘들에게 바쳤다. 이제 나의 목적은 쾌락이 아니라 순결함이었으며, 행복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정신이었다.
성적인 사랑이 아니라 정신적인 사랑을 바라는 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친구들과 음담패설을 하며 술통에 빠져 놀고는 있지만 항상 무언가 충족되지 않는 마음, 본인이 스스로 선택한 고독은 결국 정신적 사랑의 부재였다. 단순한 연애나 만남으로는 충족되지 않고 '본인 스스로를 깨닫게 해주는 사랑',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랑'을 원하는, 그러나 그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고 있었나보다.
그러다 어떤 여성에게 반해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을 부여한 뒤 싱클레어 본인 스스로를 확 바꿨다. 이게 진정한 사랑이 아님 뭐란 말임.
바로 그 시기에 나는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 늘 그랬던 것처럼. 몇 해 동안이나 꿈을 꾸지 않았던 듯했다. 이제 꿈이 돌아왔다. .. 내가 그린 초상도 자꾸자꾸 꿈속에 나타났다. 생생하게 말을 하며, 나와 친구가 되거나 적이 되어, 이따금은 찌푸린 얼굴로, 이따금은 끝없이 아름답고 조화롭고 고귀한 모습으로. ... 그리고 차츰 그것은 베아트리체도 데미안도 아니고 나 자신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와 닮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것은 나의 삶을 이루는 것, 나의 내면, 나의 운명 또는 나의 데몬이었다.
데미안에서의 꿈은 순수함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순수하고 고결한 정신 상태. 어린시절에 꾸던 꿈을 망나니로 살 땐 안나타나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베아트리체를 그리고 난 뒤 갈망하고 열망하니 꿈을 꾸었으니까.
꿈은 나와의 연결일 수도. 술 먹고 놀러다니는 과거엔 나를 잃어버렸지만 다시 나를 안내하는 사랑을 통해 나를 찾은 거지.
왜 꿈 속의 베아트리체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지 챗쥐피티한테 물어보니, 베아트리체는 곧 자기의 상징으로, 인간 내면은 고정된 하나의 자아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함. 챗쥐피티가 하는 말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이해 된다. 원래 신도 선과 악 모두를 다 아우르는 세계여야 한다니까. 이런 모습, 저런 모습 다 내 모습인 게 베아트리체를 통해 나타나는 거지.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 사랑은 두 가지 모두이면서 그 이상이었다. 사랑은 천사의 모습이며 악마이고, 하나가 된 남자이며 여자이고, 인간이며 동물이고, 최고의 선이며 극단적인 악이었다. 이를 겪는 것이 내게 주어진 일이었고, 이를 맛보는 것이 내 운명이었다. 나는 운명을 향해 동경과 공포를 품었지만, 운명은 언제나 거기 있었고, 언제나 내 위에 있었다.
내가 흔히 하는 말이 '사람이 성장하려면 아픔과 고통이 있어야해. 그것 없이는 아무런 변화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아.' 이 말이 곧 저 새와 일맥상통하는 말 아닐까. 새로 태어나려는 자는 투쟁하여 알을 깨트려 나와야 한다.
사랑은 실제로도 좋은 것만 있는게 아니라 나쁜 것도 있다. 금쪽이를 볼 때엔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을 나쁘게 만들기도 하고, 이혼숙려캠프를 볼 때엔 사랑이 관계의 파국을 이끌기도 한다. 나 역시도 그런 복잡성을 안고 살아간다. 여자이지만 때때로 남편보다 더 남성적인 면을 스스로에게서 발견한다. 부드러움과 단단함, 감정과 이성, 애정과 거리감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한다. 그걸 부정하지 않고, 그냥 인정하고 겪는 것. 이를 겪는 게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일이고, 운명 아닐까
우리는 자신과 자연 사이에 있던 경계가 흔들리면서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며, 또한 이런 형태들이, 외부의 인상이 우리 망막에 맺혀서 생긴 것인지 아니면 내면의 인상이 눈앞에 나타난 것인지 모르는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 나뉘지 않은 동일한 신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자연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 산과 강, 나무와 잎새, 뿌리와 꽃, 자연의 모든 형태가 우리 안에도 미리 새겨져 있으며 바로 영혼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영혼의 본질은 영원성이며 우리는 그 본질을 알지 못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대개는 사랑의 힘, 창조의 힘으로 느껴진다. ... 과거에 존재한 적이 있는 모든 신과 악마는 그리스 사람 것이건 중국 사람 것이건 아니면 졸루족 것이건 상관없이 모두가 우리 안에 있어. 가능성으로, 소망으로, 탈출구로 존재하는 거야. 인류가 어느 정도 재능을 가진 아이 단 한명만 남기고 모조리 멸망한다 해도, 이 아이는 모든 과정을 다시 찾아낼 거야.
한번씩 누워있으면 영적인 걸 경험한다. 몸이 붕 뜨면서 어디 다른 곳에 가있는 느낌. 꿈도 자주 꾸며, 점을 보러 가면 모든 무당들은 나에게 영이 맑네, 꿈 많이 꾸지? 그거 꿈 다 맞는 편이니까 믿어. 라고 말한다. 경계가 무너지며 이게 내가 실제로 보는 건지, 아니면 내면에서 내가 보는 건지 모르는 느낌이 뭔지 알겠다.
결국 암만 이 세상이 악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모든 사람에게 그 본질, 사랑은 누구나 있고, 그걸 알아차리느냐 못알아차리냐의 차이란 말 아닐까.
그것을 모르는 한 그는 나무나 돌, 고작해야 짐승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인식의 첫 불꽃이 깜박거리면 그는 인간이 되지. 자넨 설마 저 바깥 길거리를 두 발로 서서 돌아다니는 모든 존재를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물고기나 양, 벌레나 거머리인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개미이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꿀벌인지 알고 있겠지! 하지만 그들 모두에겐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어. 다만 스스로 그걸 눈치채고, 스스로 어느 정도는 그걸 의식하는 법을 배워야만 이 가능성이 진짜 그의 것이 되는 거지.
사람의 형태를 했다고 해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것. 논어에서도 공자는 사람을 구별하는 방법을 기술해놨다.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사람에겐 인간도 아니다. 벌레다 라고 표현한다. 인간이라 함은 '나'의 존재를 깨닫고 '나'에 대해서 인정하며, 사회가 준 가면을 벗어내고 스스로의 의지와 깨달음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외형, 직업, 성공 같은 껍데기를 사람됨의 기준처럼 여기기 쉽지만 진짜 인간이 되는 것은 나 스스로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선택하며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