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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J 여자이야기] 나를 알고, 남을 알기. 본문

마음 한 스푼(감정기록)/나만 아는 취향들

[INTJ 여자이야기] 나를 알고, 남을 알기.

honeymung 2025. 5. 12. 21:42

5/12 업데이트

 

mbti를 맹신하진 않지만, 나를 표현하기에는 mbti 만큼 좋은 것이 없다. 개인적으로 사주를 더 mbti 보다 신뢰성 있다고 생각하지만, '병화일주의 여자 이야기'보다는 'intj 여자이야기'가 더 낫지 않나. 

 

돌이켜보면 나는 20대 후반까지 ENFP였다. 에너지가 넘쳤고, 주변의 눈치를 보며 잘 살아남으려 애썼다. 사회 속 약자의 위치에서 ‘나사 하나 빠진 듯한’ 가벼움과 웃음으로 버텼달까. 하지만 30대 초,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뭔가 채워지지 않았던 허전함이 메워지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지적 호기심이었다.


어릴 적의 나를 다시 만난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금, 30대 중반의 나는 INTJ가 되어 있다.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되니, 그걸 어떻게 다듬고, 어떤 방식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J의 특성을 갖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그렇게 완성된 INTJ 여자다.

 

.

 

남편은 ESFJ다. 어제 함께 ‘지구마블’을 보다가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이정재가 방송에 나온 이후로 면치기 하는 장면 없어졌잖아. 난 원래 면치기 하는 거 별로였거든. 더러워 보이고 안 좋더라고.”

나는 이 말을 듣고 잠시 멈췄다.


“응? 이정재가 그렇게 우리나라 방송에 영향력이 커? 면치기는 그냥 개인 취향 아닌가?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거지. 그걸 이정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

 

그땐 그렇게 반문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오빠가 말하고 싶었던 건 앞부분이 아니라 뒷부분이었다.
‘나는 면치기하는 게 좀 별로더라.’

그런데 나는 ‘이정재 때문에 면치기가 없어졌다’는 그 앞부분에만 꽂혀서 반응해버린 거다.

 

이게 우리 대화에서 종종 생기는 포인트다. 문제라고까지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어긋남이 생기는 지점.
오빠는 감정을 중심으로 말하고, 나는 논리나 사실을 기준으로 받아들이려 하니까.

 

.

 

그리고 오늘, 남편이 영상을 하나 보내왔다.
이정재가 ‘전참시’에서 국수를 조용히 먹는 장면,
그걸 보고 이영자가 “어머, 국수를 소리 내서 안 먹네요?”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그 영상은 다시 이야기의 발화점이 되었다.
나는 또 물었다.

“그런데 진짜 면치기가 줄어든 게 이정재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나는 저 장면도 처음 보는걸?
요즘은 애초에 면치기 장면이 나올 만한 먹방 프로그램이 줄어들기도 했고,
굳이 오버해서 먹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던데.
히밥이나 이장우는 여전히 호로록 먹는 장면 많이 나오던데?”

그러다 결국, 오빠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냥 잘못했어. 앞으로 그런 얘기 안 할게.”

 

나는 순간 ‘그런 얘기’가 뭐지?
정말로 얘기 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문제였을 텐데.

그래서 말했다.

“그럴 때는 그냥, ‘아 이거 커뮤니티에서 본 건데~’ 이런 식으로 말해줘.
커뮤니티 글을 사실처럼 얘기하는 게 나는 좀 불편한가봐.”

 

우리는 결국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마무리했다.
하지만 오빠 마음은 아직 정리가 안 됐었나보다.
말로는 괜찮다지만, 뭔가 눌린 감정이 남아있었는지 시간이 한참 지나 오빠가 말했다.

“가슴이 답답해. 스트레스 너무 받았어.
이렇게 사실관계를 다 따질 거면, 내가 무슨 얘길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나는 그저 궁금해서, 혹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느껴서 질문했던 것뿐인데.
그리고 우리 둘이 이렇게 다름은 항상 알고 있었고

이런 부분을 먼저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첫번째라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자 말하며 나는 다 해결됐다고 생각했는데 오빤 아니었다니.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럴 땐 그냥 말해줘. ‘그냥 공감해줘~’ 라고.
꼭 반박하려고 하는 건 아니야.”

 

그러자 오빠가 조용히 말했다.

“그런 말도 괜히 꺼냈다가 싸움 될까봐, 이젠 말하기가 무서워.”

 

 

그건 두려움이라기보단, 자신 없는 사람의 말 같았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아직도 나를 모르나봐.
우리가 그런 걸로 싸울 것 같아?
10년, 20년 뒤엔 서로 많이 맞춰져서 안 싸울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오히려 신혼일 때 다투고 부딪혀야 한다고 생각해.
지금은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난 시기잖아.
그래서 이때 서로를 알아가는 대화를 해야 해. 이건 싸움이 아니라, 이해를 쌓아가는 과정이야.
그리고 그렇게 무서워하는 건, 솔직히 말해서… 용기가 없는 거야.
난 오빠가 나를 믿고, 용기 내서 말해줬으면 좋겠어.”

 

우리는 감정도, 사고방식도 다르지만
다르다는 이유로 입을 닫아선 안 된다는 걸 나는 믿고 있으니까.

 

.

 

사소한걸로 부딪힌다는게 바로 이런거 아니겠어. 
표면적으로는 ‘면치기’ 같은 하찮은 주제였지만,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세계가 있었다.

 

오은영리포트, 이혼숙려캠프 애청자로서

모든 갈등의 해결법은 서로가 어떤 모습인지를 알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다. 

 

나는 감정적인 사고보단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오빠가 감정적인 사고를 하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감성적인 대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내기 어렵다. 

 

하지만 그 순간, 오빠가 만약에 나에게 감성적인 부분으로 행동해야한다는걸 알려준다면 나는 또 습득할 것이다. 

나는 감정보다 이성이 먼저 작동하는 사람이다.


오빠가 감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내가 그 감성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건 아직 어렵다.
왜냐하면 그건 내가 자라오면서 익힌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오빠가 그 순간, “나 지금은 공감이 필요해”라고 말해준다면,
나는 분명 그걸 배울 수 있고, 다음엔 더 잘할 수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이해하고, 배우고, 관계 안에서 자라나는 사람.

우리가 지금 이렇게 부딪히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로 다르기 때문이고,
그 다름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빛나는 날을 위하여 계속해서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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